파리를 거점으로 20년 넘게 한국과 파리, 뉴욕을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이배 작가는 ‘숯’이라는 재료와 흑백의 서체적 추상을 통해 한국형 모노크롬 회화를 국제무대에 선보여온 작가다. 그의 작품은 흰 바탕에 검은 획이 조화를 이루는 절제된 여백의 미로 동양적인 분위기를 간직하면서도, 추상과 평면성이라는 현대미학의 거대한 흐름 안에 당당히 서 있다. 한불 수교 130년을 기념하는 2015년, 유럽 최대의 동양예술품 박물관인 프랑스 국립 기메 동앙박물관은 “이배에게 백지위임(Carte blanche à Lee Bae)”이라는 제목으로 이배 작가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작가로서는 2014년 서울의 현대화랑과 대구현대미술관, 프랑스의 페르네 브랑카(Fondation Fernet Branca) 재단에서의 전시에 이어 올해 가을 기메박물관에서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게 된 것이다. 현대미술이 전시되는 일 자체가 흔치 않은 이 곳에 한국 예술가로는 처음으로 이배 작가가 초대됐다. 아울러 박물관 측에서는 이번에 전시된 숯 작품 한 점을 소장하기로 결정했다. 이번 전시는 회화 설치, 비디오라는 세 개의 축을 유기적으로 결합한 그의 작업의 집대성이라 할 만 하다. 작가를 만나기로하고 전시장에 방문했던 날에는 마침 프랑스의 예술전문 TV 프로그램인 아르테(arte)의 촬영이 있었고, 인터뷰 촬영을 마친 그와 이야기를 나눠봤다.
이배 (Lee Bae, 1956년 청도 출생) 작가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한 후 1990년에 파리로 왔다. 대학시절에는 프랑스 유학파 교수들의 영향으로 시몬 한타이(Simon Hantaï)나 클로드 비알라(Claude Viallat), 피에르 술라쥬(Pierre Soulages) 같은 거장들의 작품과 친숙했다. 작가는 프랑스를 제 2의 고국과도 같은 곳이라 술회한다. 도불 후 그는 “한국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해야하는가”하는 질문을 스스로 던졌다. 이역만리 프랑스에서 작업을 하면서도 그가 나고 자란 한국의 문화와 전통을 환기시키는 숯 작업을 지속해왔고, 2012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한국의 단색화》전에도 참가했다. 단색화는 1970년대 한국에서 주류를 이룬 경향이지만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고, 최근 들어서는 세계 미술시장에서 대대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배 작가는 이러한 단색화라는 조형 언어를 현대적으로 변용하여 국제 화단에 이름을 알린, 한국 단색화의 2세대 작가로 평가된다. 그 스스로도 윗세대 단색화 화가에게 직간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았고 여러 작가들과의 연관성 안에 자신이 서 있는 것임을 인정한다. 또한 당시 한국의 화가들이 외국의 경향과 소통할 수 있는 통로가 전무했음에도 불구하고 당대 이탈리아나 프랑스, 미국에서 활동한 작가들의 작품과 유사한 형식과 동일한 정신성을 공유했음을 지적하며, 이러한 예술적인 동시대성이 경이롭다고 덧붙였다.
이번 전시는 기메박물관장인 소피 마카리우 (Sophie Macariou)의 현대미술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됐다. 그녀는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이슬람 루브르 박물관의 총책임자를 역임하고 작년에 기메의 관장으로 발탁되면서, 일 년에 한 번씩은 이 곳에서 현대미술 전시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피력해왔다. 이에 한 프랑스 미술평론가가 이배 작가를 추천하고, 수차례 작가의 작업실 방문과 논의를 거친 끝에 전시가 결정된 것이다. 소피 마카라우는 박물관 4층의 돔형 홀을 전시실로 활용할 것을 제안하고, ‘카르트 블렁쉬 (carte blanche, 백지)’라는 주제로 이번 전시회에 대한 전권을 작가에게 위임했다. 관객은 박물관 4층의 작은 나무 계단을 올라와 전시장 안으로 진입하고, 자연채광이 적당한 밝기를 제공하는 원형의 공간에서 작품들을 관람하게 된다. 전시장을 한 바퀴 돌아 다른 쪽 문으로 나가면 비디오 작업이 상영되는 작은 공간으로 연결된다. 천장과 바닥 등 전체적으로 둥근 이 곳에서는 보통 갤러리에서 작품을 설치하는 것과 전혀 다른 장소적 해석이 필요했다. 따라서 작가는 이번 전시를 위해 작품을 전부 새로 제작했다. 또한 바닥을 한지로 배접하고 채광이 강한 몇 개의 창문은 막기도 했다. 여러 개의 숯 덩어리 설치, 그리고 세 점의 회화작품과 비디오설치, 더불어 벽과바닥, 창문, 둥근 천정 모두를 하나의 작품으로 융화시키기 위해 그는 수백 장의 에스키스를 했다.
이배 작가는 단순히 전시장의 공간적 특성 뿐 아니라 5천년의 시간이 넘나드는 동양의 유물이 내뿜는 기메박물관 특유의 분위기와 작품과의 조화에 대한 고민이 컸다. 기메박물관은 단지 고미술품을 관람하는 차원을 넘어 작품과 관객간의 영적인 만남을 가질 수 있는 곳이다. 그는 “이 곳에는 동양의 뛰어난 문화재들, 특히 세계적으로 유명한 간다라 조각들이 많이 있어 영적인 기운이 굉장히 강하다. 루브르나 대영박물관의 그리스 로마 조각에는 뛰어난 재능이 있는 사람의 손재주가 보인다. 그런데 이 기메 박물관의 조각품들은 사람이 만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사람 냄새가 안 나고, 다른 어떤 미술관에서도 느낄 수 없는 초월성이나 숭고, 영적인 에스프리 (esprit)가 느껴진다.”고 말한다. 따라서 그는 “여기에 있는 모든 문화재들이 전부 동양에서 온 것처럼, 일부러 숯도 한국에서 가지고 왔다.”면서, “굉장히 먼 곳에서부터 온 것 같은 기운, 신령하게도 보이고 사람이 만들었지만 사람의 냄새가 안 나는 무엇이 없을까 생각을 많이 했다.”고 설명했다. 설치되는 장소를 의식적으로 인지하고 작품을 자리하게 한 장소 특정적(site-specific)인 작업이야말로 이번 전시의 핵심이었다. 전시도록에 담긴 수 많은 드로잉과 전시 설치 모형은 이러한 고민의 흔적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번 숯 덩어리 설치의 경우 작가는 프랑스 브르타뉴 반도 가브라니 (Gavrinis)섬의 거석을 보고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인간이 옮겼다고는 믿을 수 없는 거대한 돌덩이에서 어떠한 기호나 상징도 읽을 수 없는 절대적인 추상을 본 것이다. 끈으로 엮어 놓은 숯 역시 유용성이 결여된 하나의 벙어리로 인식될 뿐, 구상적 형태로부터 완전히 멀어져 추상으로 변모한다. 머나먼 동방의 고국에서 온 육중한 숯 덩어리는 제작부터 운반까지의 과정 모두가 일종의 작업이었다. 숯을 만들기 위해서는 옛날 황토 가마 안에 통나무를 넣고 보름간 불을 때서 굽고 보름간 열기를 식히는 과정을 거친다. 가마에서 한 달을 지내고 나온 숯의 표면에는 거친 나무의 결이 고스란히 살아 있다. 도자기를 굽듯 오래 은은하게 구워내어 나무의 질감과 형태가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다. 모든 것을 태우고 난 검은 숯에는 빨려 들어갈 듯한 근원적 힘이 스며있다. 때문에 숯 덩어리들은 신령한 기운이 가득한 기메박물관 안에서도 그 강렬한 에너지를 잃지 않는다. 나무로 태어나 몸을 태우고 숯이 되어 땅으로 돌아가는 순환구조는 시간에 대한 성찰로 우리를 이끈다.
청도에서 촬영한 다큐멘터리 필름 〈달집 태우기〉 역시 우리의 전통적인 샤머니즘이나 기원에 대한 것을 보여주려는 시도다. ‘달집 태우기’는 겨우내 모은 소나무 가지를 쌓아올려 15미터에 이르는 달집을 만들고, 새해의 첫 보름달이 떠오를 때 소원을 적어 놓은 종이를 묶어 태우는 전통 민속의식이다. 이는 액운을 몰아내고 의식을 정화하며 복을 기원하는 세시 풍속으로 한국인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이배 작가 작품의 숯과도 연결된다. 어두운 밤하늘을 배경으로 붉게 타오르는 불빛이 장관을 이루는 가운데 인간의 근원성과 순수성, 인생의 삶과 죽음이 교차된다. 문화적인 상정, 불에 의한 정화 자연의 부활 등의 개념이 뒤섞이는 가운데 그의 작업의 주요 재료인 숯이 얻어지는 과정을 생각하게 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작가의 예술적 행위라는 것은 아주 먼 곳에서부터 이미지를 가지고 온다든지 자기의 이미지를 먼 곳으로 보낸다든지 하는 여행과도 같다. ‘자연’과 ‘문화’를 연결시키는 과정이 결국은 예술적인 행위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연에 대한 이미지나 문화적인 이미지를 어떻게 조합을 시킬까에 대한 생각을 했다. 내 작업은 숯을 통해 한국의 문화적인 이미지를 덧입히고 감성을 씌우고 문화적인 향기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이다.”라고 말하면서 달집 태우기와 연결을 시킨 것이다.
비디오 속에는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는 작가의 모습도 담겨있다. 그는 매일 아침 종이 위에 드로잉을 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몸속에 기억된 모든 것을 표출하는 제스처는 자신을 찾아가고 만나는 과정이다. 본격적으로 캔버스 위에 폼을 숙이고 작업에 집중해 있는 장면은 흡사 숙련된 기술을 연마한 장인의 그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작가는 현대예술가의 기본요건으로 ‘태도(attitude)’와 ‘과정(process)’을 든다. “매일 동일한 시간에 일정하게 반복해서 하고, 그 반복의 과정 속에 자기의 세계관을 넣고 그것이 일관성을 띠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많은 단색화 화가들이 작업 과정에서 물질을 다루는 반복적인 행위를 인격 수양이나 명상의 과정으로 보고, 이를 높은 경지에 이르는 수단으로 취한다. 우리에게는 익숙하지만 서구인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이에 대해서 작가는 “서양 사람들의 미술에 대한 관점은 자기 능력에 대한 하나의 확장성, 능력에 대한 재발견, 예술과 자기와의 만남 같은 부분에 집중되어 있다. 반면 동양의 전통에는 훌륭한 예술가가 된다는 개념보다는 예술이라는 매개를 통해 인격체로서 높은 지성을 갖춘다던지, 예술작업을 자기 인격 수양의 한 방편으로 삼는 경향이 강하다”고 설명한다. 동양에서 좋은 예술가라는 바탕에는 그 사람의 인품이 어느 정도 담보가 되어있어, 훌륭한 인격을 가진 예술가의 작품은 예술적으로도 높은 경지에 도달해있다는 믿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작업은 종종 이를 위한 도구가 된다.
이배 작가의 작품은 실제로 보았을 때, 그리고 그 작업 과정을 알게 되었을때 더욱 정확하게 이해 할 수 있다. 거의 모든 예술품들에는 도판과 실제의 차이점이 있지만 그의 그림은 특히 그 격차가 크다. 평면 작품들이 가진 오묘한 표면 질감과 우아한 색감은 사진으로 재현하기 어렵다. 또한 모든 색을 포용한 검은 색에는 한 가지의 검은 빛깔이 아닌 백 가지의 색이 들어있다고 그는 말한다. 동양에서의 검정은 단지 색채의 문제가 아니다. 검정은 깊이이며 모든 색과 빛을 흡수한 색이다. 차가운 검정, 뜨거운 검정, 재와 같은 회색빛 검정, 금속물질처럼 빛나는 검정, 광택이 없는 검정 등 미묘한 차이와 농담이 있다는 것이다. 이배 작가의 페인팅을 일별하면 빠른 템포의 일펼휘지, 혹은 물감을 가득 머금은 붓을 캔버스에 찍어 내린 자유로운 제스처가 읽힌다. 그의 작품을 사진으로만 접했다면 단순히 즉발적인 서체적 추상이라고 단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작업과정을 찍은 비디오를보면 알수 있듯이, 작품의 결과물은 결코 우연적이거나 즉흥적인 것이 아니다. 이배 작가의 캘리그래픽은 고도로 계산된 형태다. 그것은 작가의 몸짓을 통해 서체적인 형태를 드로잉 한 후 적당한 형상을 고르고 그것의 본을 따 아주 세밀하게 캔버스 위에 안착시킨, 다분히 의도적인 과정을 거친 것이다.
이러한 검은 획은 캔버스 천과 매끈한 표면 그 중간 어디엔가 부유하듯 떠 있다. 표면자체는 극도로 평면적이지만 검은형태가 부피감을 가지고 안쪽에서부터 배어나오는 듯한 느낌이다. 이배 작가는 드로잉을 바탕으로 검은색의 서예적 형태를 캔버스에 그려 넣은 후 일정한 두께의 아크릴 마디엄을 반복적으로 도포하여 은은한 크림색의 바탕과 고유한 마티에르를 구현한다. 그의 회화는 2차원의 단순한 평면이 아닌 3차원적 실제로써 존재한다. 작가는 “캘리그래픽 같은 동양적 이미지로 접근, 밀납 같은 미디엄 안에 제스처와 신체성 그리고 시간성을 보존하는 개념으로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드로잉을 할 때 그는 머릿속을 비운 상태로 형태를 그려나간다. 그리고 그 중 몇 개를 골라 질문을 던진다. 드로잉 속에는 이것은 무엇인가, 나는 어디에 있는가, 왜 이것을 했는가, 이러한 형태를 만들기 위해 나의 몸 안에서 기억되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명상이 내재되어 있다. 또한 회회는 아크릴 미디엄이라는 물질로 덮여 있지만, 결국 재료로서의 물질성은 완전히 탈각된다. 한지, 물감 등 재료 자체가 주제가 되는 한국 단색화의 특성과 어느 정도 상통하면서도, 재료 자체의 의미 보다는 작품 내부의 비물질성이 보다 강조되는 측면이다. 이는 작품에 작업 과정에서의 행위와 시간성, 작가의 정신이나 여백의미 같은 비물질적 부분이 더욱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배 작가는 “서양의 유화물감이나 아크릴로 페인팅을 할 경우, 캔버스 위에 계속 덧칠을 하다보면 마티에르와 두께가 생겨 표면이 앞으로 튀어나온다. 반면 동양화의 경우 한지에 먹으로 그림을 그리면 먹이 한지에 스며들어 표변에 드러나지 않고 안으로 들어간다. 나의 작업도 결국 한지의 발상이다. 표변에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재료와 형태를 안으로 집어넣는 것이다.”고 밝힌다. 그에 따르면, “현대라는 것은 서구가 만들었지만, 현대사회의 경제와 문화 모든 분야에서 동양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다. 막강한 서구가 만든 현대를 오늘날 동양이 점령한것이나 마찬가지이고 그 만큼 동양이 파워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서구의 동양에 대한 이해와 접근성은 아직도 부족하다. 서양미술용어사전으로는 동양미술을 이해할 수 없다. 동양에서의 그림은 비워둔 여백을 위한 것이지만 서양의 기준으로 여백은 그리지 않은 것, 완성이 안 된 것, 따라서 값어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나의 경우 동양미술을 이해시키기 위해 서구적인 방식으로 풀어서 접근하고자 했다. 내 작업의 흰 여백은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물성으로 채워져 있다. 순수하게 동양도 아니고 순수하게 서양도 아닌 현대적인 방법론으로 동서양을 연결하고 서구인들에게 접근하는 하나의 통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이렇듯 이배 작가의 작품 속에는 채움과 비움, 즉흥성과 자발성, 우연과 합리성이라는 동서양적 극단이 대립하면서도 적절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은은한 자연채광이 비쳐드는 전시실로 들어가 한지 배접으로 깔린 흰 바닥을 밟고 지나가본다. 벽에는 흑백의 회화가 세워져 있고 바닥에는 자연의 에너지가 느껴지는 숯의 정령이 자리 잡고 있다. 숯 덩어리가 숲이나 야외 같은 원래의 자리에서 벗어나 미술관이라는 예술적 성전으로 이동하면서 일차적으로 그 문맥이 바뀌었다. 더구나 기메박술관이라는 특별한 공간성이 추가 되면서 또 한 번 그 성질이 변화했다. 화이트 큐브로 대변되는 모더니즘적 공간인 흰 벽과 정방형의 방이 아닌 곳에 작품이 놓이면서 새로운 쟁점이 추가된 것이다. 높고 둥근 천정과 원추형 나무달집의 형태적인 연관성과 작품을 둘러싼 신성한 느낌이 자연스럽게 흐른다. 고대인이 라스코 통굴에 벽화를 그리듯이, 그는 기메박물관의 돔형 홀을 ‘현대 동굴’로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다. 카탈로그의 사진 속에는 탄화된 통나무 더미를 옮기는 그의 제스쳐가 퍼포먼스 기록처럼 남겨져 있다 작가의 신체적 움직임과 전시장에서 작품을 바라보는 관람객의 신체, 기메박물관의 신령스런 기운과 먼 곳에서 도착한 작품의 만남 등, 전시장과 작품 그리고 관객 모두가 하나의 총체적 예술 환경으로 재탄생했다. 작가 이배가 기메박물관이라는 백지에 그려 넣고 관람객이 발굴해 낸 현대의 동굴인 셈이다.